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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김민수 국민의힘 성남 분당(을) 당협위원장

기사승인 2021.11.24  21: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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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어진 분열의 회복과, 정의ㆍ공정을 바로 잡는 길,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항해가 이제 시작됩니다!”

국민의힘 분당(을) 김민수 당협위원장은 지난 경선기간 동안 윤석열 후보의 정무특보이자 경기도 동부권 위원장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해 왔다. 김 위원장은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정권교체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위원장은 “대통령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다. 정의와 공정의 바른 토대를 염원하는 국민의 마음 위에 미래비전을 더하는 쪽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 “대한민국에 정의와 공정을 반드시 바로 세울 사람으로, 정의와 공정이라는 건전한 토대 위에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배경ㆍ인맥 없이 공개오디션 통해 당협위원장에 선발, 세대교체 이룰 인재로 주목

김 위원장은 지난 2019년 1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처음으로 시도했던 당협위원장 공개오디션을 통해서 성남시 분당(을) 당협위원장에 선발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흔히 말하는 배경도 인맥도 없이 오디션에 참가해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선발되었다. 당시 15개 지역구의 공개오디션 중 유일하게 현역 국회의원이 참여했던 분당(을) 지역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협위원장에 선발되면서, 정치권 세대교체를 이룰 한 명으로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일으켰던 신선한 바람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당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21대 총선에서 성남시 분당(을) 지역에 많은 경쟁자를 뒤로하고 단수 공천을 받았다. 여론조사 및 출구조사에서도 민주당 김병욱 후보를 앞섰으나, 새벽 3시 즈음 역전되며 석패했다. 사십 대 초반의 정치 초년생이 정치적인 거센 바람과 재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을 상대로 잘 싸웠다는 여론과 함께 아쉬움이 크다는 여론이 공존하는 결과였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패배에는 변명이 없다. 그저 믿어 주셨던 분들에게 송구할 뿐이고, 죄송한 마음을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지난 선거를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다시는 저를 믿어주는 분들에게 패배감을 안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총선 이후 현재까지 성남시 분당구(을) 지역구의 당협위원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총선 패배 이후 지역을 이탈하는 뜨내기 정치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김 위원장은 부산에서 태어나서 1988년도에 서울로 상경했다. 이후 개포초등학교, 중동중학교, 단대부고를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1996년에 분당으로 이주하였으며 이주 후 25년째 분당에서 살고 있는 분당의 찐 토박이이다.

5남매를 둔 정치권 대표적 다둥이 가족, 성남시가 선진도시 표본될 것

김 위원장은 분당에서 창업해서 기업을 일궜고, 결혼 이후 다섯 아이(아들 넷, 딸 하나)를 낳아 대가족을 이룬 정치권의 대표적인 다둥이 아빠이다. 김 위원장의 성남, 분당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남다르다. 

“성남시는 내 삶의 터전이었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도시이다. 성남시는 대한민국 최적의 위치에 있고 대한민국 미래 유수의 기업들이 성남시에 위치하고 있다. 성남시, 분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고 선도할 잠재역량이 넘치는 도시다. 성남시가 대한민국 미래도시, 선진도시의 표본이 될 수 있다.” 그가 성남, 분당지역을 이야기할 때는 묘한 흥분감이 있다.

김 위원장이 살아왔던 길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의 평범한 삶과 같기도 하고, 넘어짐과 일어섬을 반복하며 역경을 이겨낸 삶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대학 입학 후 경제적 독립을 했고, 수업이 없는 날이나 방학 때면 건설현장에서 막 일을 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대학 4학년 때는 100만 원 자본금으로 계단청소 일을 시작했다. 당시 대학생이 3D업종에 뛰어들었다고 이슈가 되기도 했다. 명함 한 장 들고 찾아간 건설현장에서는 쫓겨나기 일쑤였고, 변변치 않은 장비 하나 구입할 자본도 없었다. 당시 성남시 복정동 택지개발지구에 들어선 3~4층 건물(다가구 주택)들을 새벽 4시부터 청소하며 시작했던 청소일로 초기 자본금을 모아서 기업을 설립했고 매출 100억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 위원장의 치열했던 청년 시절은 다양한 사회 경험과 리더십, 조직운영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도전과 노력으로 삶의 걸음을 내딛어왔던 김 위원장은 중앙대학교에서 창업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국토계획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사업경영과 함께 대학의 교단에서 창업학을 교육해 왔던 그는 실무와 이론을 두루 갖춘 창업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힘들었던 청년 시절을 기억하며, 청년 창업가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서 창업콘서트와 세미나, 멘토링 봉사를 지속해 오며 청년 창업가들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정권교체 하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

김 위원장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 대해서, “군주민수(君舟民水)로 생각한다. 지금은 정당과 정치인은 ‘배’이고 국민은 ‘물’이다. 화가 난 국민은 언제든 권력을 뒤집을 힘이 있다. 무너진 경제와 안보, 만연한 실업 문제,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주거문제 그리고 정의와 공정의 상실 등 복합적으로 산재된 여러 문제는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현 정권에 대한 질책이자, 야권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권교체는 분명히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여야 모든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언제든 권력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모든 국민을 안고 갈 수 있는 가장 크고 안전한 배가 될 수 있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 김 위원장은 “깊어진 분열을 회복하고, 정의와 공정을 바로 세우는 길,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항해가 이제 시작되었다”고 대한민국의 희망을 말했다.
 

용인뉴스편집국 temp@temp.com

<저작권자 © 용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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