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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비겁한 평화는 없다!

기사승인 2024.01.05  1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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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

'청룡이 도마뱀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역사적 교훈

금년은 갑진(甲辰)년 청룡의 해이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청룡같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국가가 도마뱀같은 소국에 의해 멸망된 사례는 자주 있었다. 6.25남침전쟁간 1951년 1월4일 새벽 2시 영국 27여단이 한강부교를 건너자 오전 7시30분쯤 교량이 폭파됐고, 한 시간 뒤 중공군이 텅 빈 유령도시 서울에 입성했으며 얼마 후 서울시청 건물엔 인공기가 걸려 서울의 주인이 3번째로 바뀌었다.

그로 인해 120여만 명의 서울시민과 북한에서 남하한 50만 명 등 도합 220만 명의 피란민들이 충청·전라·경상도에 수용됐으나 많은 피란민이 1월의 엄동설한을 피하지 못하고 노상에서 동사·아사하는 비참한 고통을 겪었다.

한편 트루먼 행정부는 유엔군을 한국에서 완전 철수시킬 때를 고려해 100만 명의 일본 이주 계획까지 세운 일도 있었다.

이때 피·아 병력은 42만 명으로 대등했으나 월등한 해·공군력, 근대화된 화기·장비를 갖고 있던 유엔군이 화력·장비와 전투근무지원에 제한을 갖고 있던 중공군에 왜 맥없이 패배해 수도 서울을 내줄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잠시 과거로 눈을 돌리면 더 월등한 군사력을 갖고도 패배한 전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한반도만 보아도 612년, 30만 명의 고구려가 120만 명의 수나라 공격을 청야입보(淸野入堡, 들을 깨끗이 비우고 성에 들어가 싸운다는 뜻), 이일대로(以逸待勞,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 등 효과적 전법으로 막아내 수나라 멸망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고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04년)에서는 1만 명의 스파르타군이 2만 7000명의 아테네를 패망시켰으며, 1664년 여진족 후금의 누루하치가 이끄는 팔기군 18만 명은 사르흐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기병과 화포로 무장한 200만 명의 명나라를 정복했다.

또한 1979년 10만 명의 월맹군은 항공기 1000대, 화포 1500문, 탱크 1000대와 30만 대군으로 선제공격한 중공군을 격파했으며, 같은 해 시작된 아프간전에선 신형전차, 헬기 미사일 등으로 무장한 13만 명의 소련군이 투철한 전투의지와 산악·게릴라전에 능숙한 3만의 아프간군에 의해 10년 뒤인 1988년 철수하는 패배를 겪었다.

지난해 남북경제규모를 비교한 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2022년 수출과 수입을 합친 무역액이 대한민국은 1조 4,149억 5,000만 달러(약 1,815조원)이고 북한은 15억 9,000만 달러(약 2조 383억원)로 약 890배 수준으로 앞선다. 마치 청룡과 도마뱀같은 비교이다. 뒷걸음 치고 있는 북한 경제를 볼 때 남북의 경제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군사력은 수적우세인 재래전력과 비대칭력, WMD고려 시 북한이 아직도 우세하고, 국민안보·집단의식 측면에서 북한은 더욱더 강할 것으로 판단된다.

빈국·약소국이 부국·강대국에 승리한, 즉 “도마뱀이 청룡을 잡아먹다?”라는 역사적인 전쟁사 교훈을 잊고, 국민 안보의식이 이완돼 종북세력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군사적 대비를 소홀히 하다가는 또다시 1·4 후퇴의 비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적을 믿은 비겁한 평화의 결과, 오사카 성주 히데요리는 바보가 되어 자결

일본 오사카성과 해자 모형도

유사한 사례로 과거 일본 막부시대의 치열한 전투 중 일어난 비극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이자 오사카 성주였던 히데요리는 평화의 상징으로 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垓字)를 메우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짓 화친을 받아 들인다.

그동안 오사카 성을 든든히 지켜주던 방어물인 해자를 메우자마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본색을 드러내 순식간에 성을 함락했다. 순진했던 히데요리는 성을 빼앗기고 22세의 젊은 나이에 결국 자결하고 만다. 물론 화친을 종용했던 어머니와 아내(도구가와 이에야스의 손녀)도 함께 자살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화친 약속을 깨고 공격한 것에 대하여 “적의 말을 믿는 바보가 어디에 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오늘날 이상주의적 평화론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화다.

미군을 믿고 비겁하게도 내부의 적을 방치한 결과는 월남패망

공산치하가 싫어 탈출하려는 약 106만 명으로 추정되는 월남의 '보트피플' [사진=방송화면 캡처]

1975년 4월엔 월남이 패망하자 공산치하가 싫어 탈출하려는 약 106만 명으로 추정되는 '보트피플' 중 11만 여명이 익사하거나 해적에게 살해되는 참혹한 비극도 일어났다.

월남 패망 2년 전인 1973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과 남북베트남 3국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외국군대가 모두 철수했다. 그 후 월맹군의 총공세가 시작돼 부패한 월남정부와 반공정신을 모르는 월남국민들은 공산 월맹에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공격해오는 월맹군을 저지하기 위해 출격시킨 월남의 전투기들은 기수를 돌려 월남 티우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궁을 폭격하고(훗날 월맹군에게 영웅 대접 받음), 정부·군대·대학 등 어디든지 월맹의 스파이들이 득실됐다.

각종 민간단체로 위장한 공산분자들이 나라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지식있는 학자들과 종교인들 그리고 대학생들은 연일 반정부 데모로 날을 지새우며 서로 큰 목소리를 내던 그 나라는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의 소원대로 나라가 멸망했다.

그 와중에 월남에서 반정부 데모를 주동했던 많은 지식인·종교인들을 포함한 반정부인사들이 형무소에 수감됐다. 나중에 확인된 것이지만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반정부 투쟁을 벌이며 파월 한국군과 미군들이 싸웠던 게릴라(베트공 전사)들 조차도 모두 체포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이때 처형된 월남 사람들의 규모가 1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월남에서 반정부 활동을 벌인 세력들은 통일 베트남에서도 똑 같이 반정부활동을 벌일 것이라는 논리였다. 마치 6.25남침 전쟁 전에 남로당 당수를 하며 공산당의 총수임을 자처했던 박헌영이 6.25이후 월북해 열렬한 환영을 받다가 처형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 월남은 내부의 적을 방치했기 때문에 안에서 곪아 무너졌다. 우리도 내부의 적은 반드시 색출해 제거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평화론이 확산되었었고 야당 대표도 한때 전쟁보다는 비겁한 평화 더 선호하는 의견을 제시하여 상당히 우려스럽다. 즉 호시탐탐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북한에 대해 “좀 더 퍼주고 달래고 대화로 설득하자”는 주장이다.

이들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이란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긴장 고조가 우려된다며 한때 일체의 군사대응에 반대했다. ‘긴장 조성’보다 ‘비겁한 평화’가 낫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경제력은 우리를 앞섰다. 그러나 무력적화통일 준비에 전념한 결과 북한경제는 몰락했고, 1994년 김일성 사후 아사자가 300만 명이나 발생하는 등 급격한 체제붕괴 위기에 내몰렸다. 전 세계 공산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어서 소련 등 외부 지원도 막혔다. 그러나 북한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늘날 오히려 막대한 군사력과 핵으로 무장해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을까? 고(故) 황장엽 씨는 “그동안 우리가 퍼준 돈이 몰락해가는 김정일 정권을 다시 일으키는 버팀목이 됐다”며 통탄했다. 실제로 우리의 대북지원은 약 69억 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급사한 김정일은 이러한 막대한 지원에도 ‘고난의 행군’ 속에 수백만을 굶어 죽게 방치하고 오로지 당·정· 군의 친위세력들만 먹여살리면서 강성대국을 목표로 핵을 만들었다. 29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지원은 13~17억 달러가 소요되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였고, 김정은의 통치하에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지원으로 살아남은 북한으로부터 온당한 보답을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북한은 대북 지원을 받으면서도 1999년 제1연평해전을 일으켰고, 2002년에는 월드컵 축제 중에 제2연평해전을 일으켜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꽃다운 넋들이 산화했다. 2010년에도 천안함 사건으로 군인 47명,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4명이 희생됐다.

따라서 안보의 마지막 보루인 군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북한의 도발에 굴복해서는 안되며, 앞으로 다시 도발할 시에는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 그 응징의 한가지 방법으로는 그동안 중지되었던 대북심리전의 재개하는 것도 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전쟁으로 확산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겠지만 현정세를 볼 때 이는 북한이 더 겁내고 있을 것이며, 우리 군의 응징 의지가 단호하다면 아예 도발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겁한 평화는 역사가 증명하듯 더 많은 피를 요구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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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 : 국민의힘 경기도당 통일안보위원장/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대통령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

김희철 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 hcl_0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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